세계 주요국이 잇따라 자국 내 공장 설립과 투자를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각종 부품·소재 등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다. 정작 한국은 해외 기업은 물론 우리 기업조차 불러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산업통상자원부의 ‘2021년 해외진출기업 국내복귀 수요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 나간 한국 기업 801개 중 797개(99.5%)가 국내 복귀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을 촉진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성과와 역량 공유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에 강한 인센티브(유인책)를 부여해 한국에 돌아오게 함으로써 산업 불균형까지 해소하자는 구상이다. 한국의 산업 정책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이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나라 기업·산업에 영향을 줄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 경제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장 이후 또 한 번 변화하고 있다.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국제 질서가 탄생했다. 이전에는 자유방임 세계화, 즉 가장 비용이 싼 곳에서 생산해 가장 세율이 낮은 곳에서 세금을 낸다는 공식이 있었다. 그러나 G7 회의에서는 콘월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규범에 기반하되 자유롭고 공정한 국제 무역과 경제 시스템’의 구현을 주창했다. 새로운 규범의 핵심은 최저 법인세율의 국제적 공조와 구글 같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다. 특히 미국이 주장하는 법인세 공조를 유럽이 받아들이고, 유럽이 주장하는 디지털세를 미국이 받아들이는 역사적 타협을 이룬 것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과 유럽 간에 있었던 일정한 반목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라는 공통의 경쟁 상대를 의식했기에 가능했다. 국제적인 중국 견제 연대가 시작된 것이고, 이는 중국에는 상당한 불리한 국면 전환을 의미한다.
―새 질서가 국제가치사슬(GVC) 블록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나.
▷과거 트럼프의 미국이 기대했던 전면적 디커플링(미국과 중국 간 경제적 분리)은 불가능해지고, 대신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미국 중심의 GVC가 구축된다. 부분적 디커플링인 것이다. 물론 중국은 이미 전기차, 배터리, 드론, 풍력발전, 우주 탐사 등에서 세계 선두권의 경쟁력을 구축했다. 다만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는 서구권의 독점성 때문에 단기간에 추격을 완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은 서방과는 다른 독자적 기술 경로로 추격해올 것이다. 하지만 10년 이상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의도는 일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도 반(反)중 전선의 확대로 몸조심을 하면서 양국 간 공존 속 경쟁이라는 새 질서에 동의하며 갈 가능성이 높다.
―새 국제 경제 질서는 한국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중국에 다 넘겨주지 않고 기존의 주력 제조업 활동을 해나가면서 첨단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10년 안팎의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한국에는 차선의 시나리오다. 반도체를 한국과 대만 등에 의존해야 된다는 점에 대해 선진국들은 불편해하고 있다. 공급망 쏠림에 대해서도 불안해한다. 그래서 미국도 독일도 반도체를 하겠다며 나서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 등 서방에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믿을 만한 파트너(동반자)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 독과점 영향을 행사하지 않고, 좋은 파트너라는 걸 알려준다면, 서구도 불안해하지 않고 공장 등 생산설비를 자국에 짓지 않을 것이다. 경제외교에서 한국이 믿을 만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 올해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핵심·신흥 기술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공급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이 리쇼어링에 나설 때인가.
▷지금이 정부가 리쇼어링 촉진 정책을 시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여러 국가가 중국을 떠나고 있다. 미·중 갈등 과정에서 중국산에 관세를 매기면서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 중국 내 인력에 대한 임금이 상승하는 것도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가속화한 디지털화도 리쇼어링에 기회로 작용한다. 기업이 공장을 지을 입지를 선정할 때 고려하는 여러 요인 중 높은 노동비용의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술 혁신을 통한 리쇼어링을 촉진하려면 금융 지원과 더불어 정부와 대기업의 기술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스마트공장 구축이 대표적인 기술 지원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와 디지털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심화시켰다.
▷진단키트 업체 솔젠트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원 사례가 모범 답안이 될 것이다. 솔젠트는 독일에서 진단키트용 플라스틱 튜브용기를 수입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자국 내 수요가 급증하자 독일 업체가 갑자기 수출을 중단했다. 이에 삼성전자와 협력해 직접 튜브용기 100% 국산화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기존 수입품보다 개선된 튜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뿐만 아니라 공정에 필요한 작업을 체계화하는 등 스마트공장 구축으로 솔젠트의 생산성은 전보다 73%나 증가했다. 삼성 등 대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중소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면 얼마든지 제2, 제3의 솔젠트가 나올 수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보면 이익 공유가 아니라 역량 공유가 훨씬 더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