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는 왕이다(Dollar is King).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시장은 없다. 개인, 기업, 국가 차원에서 재무적 필요에 의해 달러를 비축한다. 이른바 리저브 커런시(Reserve Currency), 즉 준비통화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의 준비통화는 곧 달러였다.
IMF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킹 머니’, 달러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국가별 외환보유액 중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73%에서 꾸준히 줄어들어서 지금은 58%로 내려왔다.다음 왕은 누가 될 것인가? 디지털 자산시장에서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최근 벌어졌다. 코인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준비 통화로 달러가 아닌 비트코인을 택한 것이다.
코인은 가격변동이 심하다. 그래서 금융거래를 하려면 불편하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1달러에 가격을 고정하고 암호화폐 특징은 그대로 사용하는 코인을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액만큼 달러나 미국채를 예치하고 그만큼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했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을 가져가면 해당 액수만큼 달러로 바꿔줬다.
테라는 UST라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 1UST가 1달러다. 그런데 테라는 달러를 예치하지 않고 UST를 발행한다. 달러를 예치하지 않고도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달러와 고정된 UST를 발행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다. 이것을 믿고 UST를 블록체인금융인 디파이의 수단으로 쓰는 프로젝트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UST는 루나(LUNA) 코인으로 교환된다. 1UST가 1달러보다 높으면 사람들은 UST를 팔아 LUNA를 사서 이득을 취하고 1UST가 1달러보다 가격이 낮으면 LUNA로 UST를 사면 이득을 보도록 수학적으로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1UST가 1달러에 고정된다.
당연히 UST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달러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하락의 악순환이 일어나면 제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테라는 이런 의심을 잠재우고, 안정적으로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3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30억 달러를 은행에 예치했을까? 아니다. 테라는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 한국은행이 달러와 금을 보유하듯이 테라는 비트코인을 보유한다. 다시 말해 UST의 준비 통화는 달러가 아니라 비트코인이다.
디지털 자산시장에서는 UST를 이용해서 탈중앙금융(디파이) 상품을 만들었다. 앵커프로토콜이라고 하는 블록체인 대출 프로젝트는 동종업계 1위에 오른 바 있다.
이처럼 테라 블록체인을 이용한 생태계가 급성장함에 따라 UST의 발행량도 급증하고 있다. 성장률 면에서는 다른 스테이블코인을 압도한다.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원조지만 이더리움 등 다른 블록체인에 비해 약점도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이 극히 미미하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도입한 이더리움 네트워크 위에서 디파이, NFT 등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꽃피는 것과 비교하면 뭔가 허전하다.
이런 비트코인에 테라라는 지원군이 생긴 것이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테라 네트워크가 비트코인을 자신들의 세계에서 준비통화로 삼겠다고 선언했기 떄문이다.
비트코인과 테라 연합은 정부규제와 관련해 다른 코인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다. 시장은 규제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투명한 규제가 시장발전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자율적인 프로그램이란 블록체인의 특성이 규제로 제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그래서 알트코인을 ‘똥코인’이라 비판한다. 비트코인은 정부가 막을 수 없는 반면 알트코인은 정부규제로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특정한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기업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완벽한 탈중앙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다른 코인들은 특정 기업이나 개발자 개인의 주도로 개발이 되고 있어 정부가 이들만 규제하면 사실상 금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비트코인은 투자 규제는 받을 수 있어도 당국이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게 불가능한 반면 다른 코인들은 존망의 위기에 처한다.